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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와 분석

영화 '걸어도 걸어도' 리뷰 [가족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힘이 되는 영화]

by 올때모기향 2022. 10. 27.

출처 : 네이버 영화

 

고레에다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를 감상했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작품을 본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잔잔한 감성의 작품이며 그 속에 이쁘게 포장해 놓은 메시지가 감동적인 영화였습니다.

 

 

가족영화는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고레에다 히로카즈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처음 안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였습니다. 아무 정보도 없이 본 영화였지만 보고 난 뒤 울림이 있는 영화를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에 제가 보는 가족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가족영화를 잘 만든 것은 아니고 오늘 이야기할 작품 '걸어도 걸어도'가 큰 호평을 듣자 그 이후부터 가족영화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확실히 첫 작품인 '환상의 빛'은 가족영화로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전달 방식이 인상 깊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영화는 일반적으로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교훈을 얻는 작품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들은 '가족영화의 탈을 쓴 인간사'로 생각합니다.

오늘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게 하고, '원더풀 라이프'는 아름다운 추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등 여러 감동을 선사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최근에 송강호, 아이유, 강동원이 주연했던 '브로커'라는 영화도 국내에선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고레에다 감독 영화답게 많은 울림을 줬던 영화였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가 갖는 힘

 

출처 : 네이버 스틸컷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들은 잔잔하고 정적인 영화들이 대부분이어서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그 매력을 알게 된다면 참 아름답게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걸어도 걸어도'는 몇 신을 빼고는 카메라가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고정되어있고 등장인물들이 프레임 안과 밖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상호작용합니다. 인물이 어디론가 움직여도 전혀 따라가지 않고 움직이는 씬은 애초에 롱 쇼트로 찍어 카메라가 움직일 필요가 없게 합니다. 이는 영화를 정적으로 만들지만 프레임 밖의 상황들은 관객들의 상상에 맡기 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영화를 더 다채롭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상상력은 최고의 디자인'이라는 말처럼 고레에다 감독이 굳이 보여주지 않은 장면들은 관객들이 영화 장면을 채워나갈 것입니다.

 

또한 그 장소를 상상으로 채워 넣기 때문에 더 입체감이 있게 느껴지며 마치 관객이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영화의 내용들이 특별한 상황의 가족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울려 퍼지는 감정

 

출처 : 네이버 스틸컷

 

잔잔한 영화 특성상 한 가지 단점이 있긴 합니다. 당최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습니다. 안 좋게 말하면 불친절한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장남'은 이야기의 흐름의 가운데에 있는 인물인데 어떤 사람이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영화 초반까진 전혀 아무런 정보도 없습니다. 영화에서 회상신을 넣어 보여주지도 않고 장남을 묘사하는 내용이 전무합니다. 극 중 옛날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심지어 그 장면에서도 그 옛날 사진을 관객들에게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이는 더욱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을 비극을 더 애잔하게 만듭니다. 또한 극사실적으로 이러한 비극을 가지고 있을 실제 가족들을 반영하는 것만 같습니다.

실제로 장남이자 형을 사고로 잃어버린 가족들처럼 그에 관한 얘기를 꺼려하며 일부러 애써 무시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런 불친절한 연출로 관객들이 느낄 감정을 극대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물들이 하는 행동, 가는 장소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 그 애잔함이 더 깊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는 은퇴 후에도 병원 및 진료실을 아직도 유지하며 장남을 구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아버지가 장남의 사진을 들며 울며불며해야 그 감정이 오롯이 전해질까요? 아무런 설명이 없는 장면에도 인물들의 감정을 알 수 있는 장치가 있어 꽁꽁 숨겨놓은 마음을 더 가슴 깊이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연출은 '걸어도 걸어도'에 상당히 많이 나오며 그 의미를 하나하나 되새김질하는 것도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영화를 100% 감상하는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살아갈 힘을 주는 영화

 

출처 : 네이버 스틸컷

 

사람들은 영화를 본 뒤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통쾌한 액션 영화를 보며 얻을 수 있는 쾌감', '영화에서만 가능한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주는 감동', '화려한 히어로들이 주는 경외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걸어도 걸어도'는 보고 나면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고, 잊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장남이 구해주었던 아이를 매년 불러 불편한 자리를 만들면서까지 말입니다.

하지만 과거에만 얽매여있으면 현재를 살아갈 순 없겠죠. 극 중 어머니는 과거 남편이 바람을 핀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오히려 그 괴로웠던 순간을 덤덤히 말하고 추억으로 즐기면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장남을 빼앗아버린 바다에 가고 싶어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버리지만, 차남과 함께라면 그 천벌 받아야 할 바다를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언제나 한 발자국 늦게 표현하지만,  나도 모르게 현실을 살아갈 힘을 가족들에게서 얻는다.' 이것이 영화를 끝까지 보면 얻을 수 있는 주제이며, 힘든 세상을 살아갈 힘인 것 같습니다. 이 메시지들은 감독이 전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영화를 찬찬히 음미하며 그 의미를 관객들 스스로 생각해보아야 얻을 수 있는, 가슴 깊이 울리는 감동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 감정이 차오르면 배우들의 우는 장면이 없어도 관객들은 눈물을 떨어트린다고 생각합니다. 억지로 쥐어짜 낸 눈물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살아가기 팍팍할 때 다시 한번 더 감상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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