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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와 분석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리뷰, 분석 [ 허진호 / 한석규 / 심은하 / 로맨스 / 잔잔한 영화 ]

by 올때모기향 2022. 12. 25.

출처 : 네이버 영화

오늘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리뷰해보겠습니다.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영화이며, 과장되지 않는 표현으로 잔잔하게 스며드는 감동이 아주 훌륭한 영화입니다.

 

여담으로 메인 포스터의 저 장면은 영화 내에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마 편집된 것 같습니다.

 

 

미래가 없는 사람은 과거를 그리워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정원 역의 한석규 배우는 미래가 없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모종의 병에 걸려 불치병을 앓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영화 초반에  정원은 누군가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는데, 거기서 어떤 남자가 '살 사람은 먹고살아야죠'라고 말하며 식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정원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쉬는 날에 무얼 하느냐는 질문에 자고, 다람질하고 등등 소일거리를 한다고 말합니다. 미래를 위해서 공부를 한다거나 앞으로의 날을 위해서 하는 일이 없이 현재만 살아갑니다.

 

또한 미래가 없기 때문에 과거를 많이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장 처음 정원은 근처 초등학교 종소리에 눈을 뜨게 됩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초등학교의 시간표에 맞출 필요가 전혀 없지만, 옛날을 그리워하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학교의 종소리에 눈을 뜨는 것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여자를 30이 넘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품고 있었으며, 사진관 앞 홍보용 사진으로 올려놓고 소중하게 보관할 정도입니다. 마지막 씬이 돼서야 그 액자의 인물이 바뀌게 되는데, 그만큼 과거 어린 시절의 소녀를 많이 좋아했던 것으로 표현됩니다.

 

정원의 행동들도 다소 어린이 같을 때가 있습니다. 수박을 먹으며 마당에 수박씨를 아이처럼 뱉는 장면, 다림 역의 심하은 배우와 노는 장면에서도 놀이공원에 가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뜀박질을 하며 놉니다. 정원의 대부분의 행동들이 과거를 그리워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행동들로 묘사됩니다.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한국영화를 떠올렸을 때 뻔한 비판이 있습니다. '너무 신파다', '너무 감정이 과잉되어있다'입니다. 굉장히 동의하는 부분이고, 많이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감정의 과장된 표현이 전혀 없습니다. 소재만 본다면 충분히 신파처럼 만들 수도, 격하게 표현할 수도 있지만 98년도의 이 작품은 절제된 표현의 미학을 충분히 알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관객들에게 보여주는지 아주 잘 아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화내거나, 우는 장면도 거의 없고 화를 내는 장면에선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화의 내면에는 정원의 씁쓸함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암시가 되어있고,  화를 내는 표정을 클로즈업하지 않고 롱 샷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한석규 배우가 우는 장면은 딱 한 번 나오는데, 그 장면도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는 한석규를 이번에도 롱 샷으로 찍습니다. 연기 잘하는 명배우의 표정 연기를 프레임 가득 담아 절절한 감정을 관객들에게 보여줄 가장 좋은 기회인데 감독은 왜 한석규를 클로즈업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감정을 폭발시켜 관객들이 소화하기 편하게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멀찍이 샷을 찍어 먹먹하고 아련한 감정을 표현하며, 관객들에게 정원이 느낄 슬픔, 두려움, 비참함을 각자 떠올리게 만든 것 같습니다. 

 

허진호 감독의 표현법은 상당히 절제되어있습니다. 감독의 표현법을 학교 수업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수학 문제의 풀이법을 전부 설명해주면 학생들은 이해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금세 까먹고 와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풀이를 생각해서 문제를 풀면 더 잘 기억하고 바로 와닿습니다. 마찬가지로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인물들이 느낄 감정들을 전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정원에게 다림이 편지를 쓰게 되는데, 흔한 영화라면 다림이 편지를 쓰며 내레이션으로 그 내용을 관객들에게 알려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또 마찬가지로 정원이 다림에게 답장을 쓰게 되는데, 이번에도 편지의 내용은 전혀 말해주지 않습니다. 관객들이 그 내용을 상상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감정의 표현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상황까지도 구체적으로 말해주진 않습니다. 정원이 병원을 들락거리지만, 어떤 질병인지, 무슨 약을 먹는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관객이 영화를 보며 유추하고 스스로 감정의 일렁임을 일으켜야 합니다. 또한 정원이 아파하며 몸을 뒤틀고, 가족들이 그런 정원을 보고 놀라 하는 장면도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 내용상 중요하지도 않고 관객들에게 감정만 강요할 뿐입니다.

 

영화의 연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극 중에서 딱 한번 페이드 아웃 기법이 들어가는데 그때는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여름에서 겨울이 됐을 때입니다. 보통의 영화라면 '몇 개월 뒤, 겨울' 이런 식으로 자막이 깔리겠지만, 역시나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습니다. 페이드 아웃이 들어갔다는 점, 배우들의 옷이 두꺼워졌다는 점, 바닥에 눈이 깔린 것을 보고 유추하고 관객이 생각해내야 합니다.

 

이런 식의 표현은 영화가 불친절하다고 관객들에게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 많이 숨겨져있지도 않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리고 영화 스토리 상 모든 요소들이 이렇게 표현되지 않고 잔잔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에 '8월의 크리스마스'를 더 은은하고 울림이 있는 영화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장르가 '로맨스'로 되어있지만 사실 저는 로맨스보단 드라마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로맨스 요소는 정원의 슬픔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로맨스물을 원하시던 드라마물을 원하시던 '8월의 크리스마스'는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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