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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와 분석

영화 '팬텀 스레드' 리뷰, 분석 [ 폴 토마스 앤더슨 / 다니엘 데이 루이스 / 빅키 크리엡스 / 팬텀 스레드 뜻 / 결말 ]

by 올때모기향 2022. 12. 23.

출처 : 네이버 영화

오늘은 영화 '팬텀 스레드'를 리뷰해보겠습니다. 웰메이드 무비의 대표주자인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이고, 역시나 이번 작품도 잘 만들고 다른 감독들에게 많은 귀감이 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팬텀 스레드의 뜻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의 제목이 주는 이미지는 굉장히 강력하고도 고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팬텀 스레드'라는 이름은 영화 감상하기 전에는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 힘듭니다만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떠한 의미인지 대강 짐작은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 그래도 직역하자면 팬텀은 '유령'이라는 뜻이고 스레드는 '실을 꿰다' 이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공포영화가 아님에도 이런 제목을 붙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주인공인 레이널드 우드콕 역을 맡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극 중에서 어머니 이야기를 잠깐 해줍니다. 어머니의 재혼 드레스를 본인이 직접 만들었는데 오랜 시간 동안 힘들게 만들었다고 표현합니다. 또한 드레스를 만드는 기술을 어머니에게 받았다고 말합니다. 레이널드가 편집적으로 일에 집착하고 결혼식이 얼마 지나지 않은 날에도 일을 하러 가는 모습을 보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기술 그 자체가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일 자체가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독버섯을 먹고 몸져누울 때 레이널드는 어머니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인간이 가장 허약하고 초라해질 때 가장 거리낌 없고 솔직해지는 것을 보았을 때, 레이널드에게 있어서 어머니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에게는 같이 사는 누나가 있는데, 마치 어머니처럼 꼭 붙어있으면서 어머니가 해주어야 할 일들을 대신해서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어머니만큼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정도로 주인공에게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팬텀(어머니에 대한) 스레드(집착)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영화 '팬텀 스레드'는 그런 그리움과 집착 속에 살아가는 한 남자가 우연히 어떠한 여성을 만나 그런 집요함을 떨쳐내는 이야기를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시너지

 

출처 : 네이버 영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는 너무 명작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한 번 감상하기 전에는 잔뜩 긴장을 하고 보게 되고 최적의 컨디션인 상태에서 보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어렵기도 하고, 감독의 섬세한 연출에 감명을 받기도 합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와 마찬가지로 '팬텀 스레드'는 이야기의 주제도 그렇지만 그다지 폭발적인 소재는 아닙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드레스 장인이 한 여자를 만나 파멸하는 이야기'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감정의 폭발은 있을 수 있으나 사물의 폭발은 찾아볼 수 힘든 내용입니다. 감정의 분출도 있긴 하나 폴 토머스 앤더슨은 그런 표현은 정말 최적의 순간이 아니라면 표현하지 않고, 남발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국영화처럼 쓸데없이 진지한 대사를 하며 연기를 과장되게 하는 순간은 전혀 없습니다.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 리뷰 [ 연기력 / 정적인 영화 ]

오늘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리뷰해보겠습니다. 주연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이번 작품에서 신들린 연기력을 보여주며 작품에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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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마스 앤더슨의 연출력과 맞물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가 한층 더 빛나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도 몇 상황을 제외하고는 거의 잔잔합니다. 여기서도 잔잔한 연기가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극 중에서 알마 역의 빅키 크리엡스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신이 너무 아름다워요' 이런 수작 부리는 대사는 일절 없습니다. 그저 서로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미묘한 미소만을 연기하고 감독도 그것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폭발적인 감정을 연기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고 생각하지만 알듯 말듯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렴풋한 감정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 의미를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그런 희미한 감정들이 객석에 절절히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섬세함

 

출처 : 네이버 영화

 

화려함으로 무장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는 연출로 무장한 작품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후자의 작품을 더 잘 만드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팬텀 스레드'에서는 수많은 소품들이 나오지만 제대로 설명을 해주는 방식은 없고 관객들이 유추해서 알아내야 합니다. 그 의미를 알아채신다면 영화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 레이널드와 알마가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알마가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밥을 먹습니다. 레이널드는 그 장면을 보고 별 말을 하진 않지만 레이널드의 표정과 눈짓을 보고 굉장히 불편해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시끄럽게 밥을 먹어.'라며 핀잔을 주는 대사는 전혀 없습니다.

 

또한 레이널드와 알마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레이널드가 립스틱을 지워주며 '화장 안 한 것을 더 좋아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수수한 것을 선호하는 취향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반복되고 틀에 정해진 것을 강박적으로 고집하는 레이널드의 상황과 성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반면에 알마는 그런 레이널드와 그의 저택에 반대되는 인물입니다. 행동이나 대사로도 다분히 표현되기도 하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이 선택한 영화적 장치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저택에서 공주의 하얀 드레스를 만드는데, 레이널드와 다른 재봉사들은 전부 흰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개성 없고 단조로운 삶을 사는 레이널드를 비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마는 그와 대비되게 강렬하고 눈에 띄는 빨간색 옷을 입고 그 사이를 종횡무진합니다. 옷에서 알 수 있듯이, 알마는 본인을 계속해서 표현해야 하고 레이널드에게 본인의 가치를 계속해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감독의 섬세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알마가 처음으로 독버섯을 차에 넣을 때, 독버섯이라는 암시를 주게 되지만 확실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버섯을 갈아 차에 넣을 때 높은 고음의 음악을 그 순간 배치함으로써 관객들은 무언가 불길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레이널드와 알마가 결혼한 이후 알마가 무도회장에 가게 되는데 거기서 들려오는 사운드 또한 굉장하고 많은 영화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레이널드의 말을 무시하고 알마가 무도회장을 찾아가 신나게 놀게 됩니다. 그 장소에 레이널드가 부인을 찾기 위해 도착하는데, 화려하고 정신없는 음악이 들리는 가운데, 쓸쓸한 음률의 배경음악이 잔잔하게 깔리며 두 음악이 섞이게 됩니다. 남들은 화려하게 즐기는 순간 레이널드는 아무런 대사 없이 음악만으로도 착잡하고 암울한 심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인물이 마주하는 순간, 혼재되어있던 음악은 끊기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레이널드와 알마는 서로를 대치하게 됩니다.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 답답하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암시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대사도 없이 두 사람의 관계를 사운드로만 표현한 연출력에 크게 감탄했습니다. 역시 무수한 극찬을 받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팬텀 스레드의 결말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를 다 보시고 나면 영화의 결말에 의문을 품으실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영화를 끝까지 보면서도 이해가 되질 않았던 부분이 있지만 여기서 조금 제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레이널드는 알마가 해준 요리를 계속해서 의심스럽게 쳐다봅니다. 독백이나 대사가 없지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만으로도 레이널드의 생각이 관객에게까지 전해집니다. 아무튼 독버섯으로 만든 요리를 먹을지 말지 굉장히 뜸을 들이는데, 입에 넣고 씹으면서도 삼키는데 주저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왜 다 알면서도 독버섯을 먹는지 의아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서 가장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레이널드는 반복되고 강박적인 삶에서 알게 모르게 고통을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 삶에서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는 인물은 오로지 알마입니다. 그래서 알마가 원하는 대로 독버섯을 알면서도 먹게 됩니다. 물론 독버섯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택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레이널드는 또 본인이 과거에 계속해왔던 일들을 해올 거고, 또 알마는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레이널드가 다시 본인에게 의지할 수 있고, 또 그 결과 본인을 사랑할 수 있게 독을 탄 것입니다. 레이널드는 알마가 하는 짓을 전부 보고 있었지만 자신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듯, 정말 이게 당신의 진심이냐 묻는 듯한 눈짓을 오랜 시간 보내게 됩니다. 결국 레이널드는 알마가 원하는 대로 독버섯을 먹고 몸이 허약해진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자신의 건강, 신체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을 알마에게 표현한 레이널드는 비록 몸은 버렸지만 알마와 함께 여생을 함께 보냈을 것입니다. 자신을 괴롭히고 속박하게 했던 유령을 떨쳐 내고 말입니다.

 

 


좋은 영화일수록 해석이 다양할 수 있습니다. 작품 내에서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지 않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는 곡해될 여지가 많습니다만 일단 제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평론가도 아닌 일개 한 관람객의 생각이므로 틀릴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생각을 너그러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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